‘성지 완전 일주’여행 참가 소감

한 병덕
2023-02-22
조회수 408

2월 5일~18일까지 시행된 ‘성지완전일주’(*엄밀한 의미에서는 요르단, 애굽, 로마 등이 빠진 ‘성지완전 일주’라는 명칭은 적절치 않아 보이고 ‘3개국 기독교 유적지 탐방’이라는 표현이 적절할 것이다)여행단의 일원으로 참가했다. 코로나 훨씬 이전부터 한 번은 다녀와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던 문제였는데 코로나로 막혀있었고, 연령에 따른 퇴행성 척추, 무릎 등 건강의 계속되는 악화와 언제 또 무슨 예상외의 사건으로 여행이 막힐지 모르고, 한 번에 여러 곳을 다니는 프로그램이 드물어 계속 기회를 보고 있었는데 마침 갈릴리 여행사에 내가 고르던 조건의 근사치가 있어 척추수술 2개월 미만으로 주변의 우려를 무릅쓰고 강행했었다.

하여 이런저런 소감을 여기 좀 요약하여 올린다. 당연한 말이지만 이것은 내 개인의 소감일 뿐 다른 이들은 또 달리 느꼈을 수 있을 것이다.

 

먼저, 참가하신 모든 이들이 결국 한 팀처럼 화합되어 움직였다고 생각되며 그점 편안한 여행이었다. 그런데 다른 이들은 모두 기존 교회에 소속된 분들이었으나 나와 아내 두 사람만은 기존 교회에는 소속되지 않은 사람들이어서, 여행 중에도 간단히 소개는 했지만, 여기 다시 조금 더 소개하고 본론으로 들어가고자 한다.


나는 서울 공립고교 교사로 봉직하다가 14년 전 정년을 했으며 학부과정으로 신학을 했고 대학원을 교육대학원의 영어교육학을 전공했다. 기독교 관련은 30여 세 이전까지 세례도 받고 기성 교회신자였으나 일본 우치무라 간조(內村鑑三)의 저서들에 접하고 그의 ‘무교회’ 신앙에 접하게 되었는데, 그 내용에서 나름 ‘예수의 종교는 이것이다’며 기독교의 진수를 느끼고 무교회로 옮겼었다.

즉 우치무라의 성서강연이 일본에서 큰 반향을 일으키자 한 독일 선교사가 찾아와 “선생의 성서강의 내용은 정확하다. 그런데 여기는 성서연구와 강연만 있지 예배가 없지 않느냐?”라고 물은데 대해 우치무라는, “그렇다. 우리는 깊이 성서 연구로서 하나님의 말씀의 진리를 분명히 한 다음에 예배는 그 진리를 가지고 일주간 사는 삶이 우리의 예배다.”는 답변이었다. 즉 기독교의 예배는 특정 시간, 특정 의식으로 따로 분리할 것 없이 삶 자체가 예배가 되어야 한다는 것. 곧 ‘삶의 예배화’가 기독교 예배의 진정한 의미라는 말이었다. 그때까지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익숙한대로 나 역시 일요일, 혹은 수요일의 교회 모임만을 예배로 배웠고, ‘예배에 참석했으니 이제 나머지는 그리스도인답게 살아야 한다’는 마음으로서 교회생활을 하던 나로서는 우치무라의 이 답변에 참으로 신선하고 ‘아멘’ 했던 것이다. 삶의 예배화라 해서 내가 대번에 무슨 성인이 된다는 의미일 수는 없지만 적어도 그리스도가 당신의 피로써 사신 하나님의 백성된 자의 삶은 그것이어야 하고, 강조되고 추구되어야 하는 방향은 그것이어야 된다는 것은 성서적 관점에서 명확한 것이었다. 그동안 교회인으로서 ‘무교회’라는 명칭에 처음에는 약간의 거부감이 있었으나 알고보니 그 명칭은 우치무라가 먼저 사용한 것이 아니고 제도교회와는 독자의 길을 걷는 우치무라의 기독교 전도에 대해 다른 사람이 붙여서 고유명사화된 것이었다. 무교회 성서 집회에 참석해 보니 숨소리 조차 죽인 경건한 분위기의 성서 낭독과 찬송과 기도가 있었고 깊은 연구의 성서강연이 1시간 훨씬 이상 지속되었다. 당시 성서 내용 이해에 목말라있던 나로서 딱 내 스타일이었다. 단 세례, 성찬 등 의식만 없었는데 우치무라는 원하는 사람에게 세례도 주었다고 하지만 나는 세례도 받고 성찬에도 참여했음에도 사실 나는 체질적으로 기독교에서의 의식을 싫어한다. 기독교는 의식이 아니며, 유대교에서 의식으로서, 상징으로서, 그림자로서, 보여주었던 것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실체화되었다는 믿음 때문이다. 물세례의 실체는 성령세례이며, 그리스도의 살을 먹고 피를 마시는 성찬의 실체는 내 안의 그리스도의 내주(內住)라는 믿음 때문이다.

 

아무튼 나는 무교회 신자로서 40여년, 코로나 이전까지 작은 성서집회 주관과 계간(季刊)으로 개인 전도 잡지를 발행하다가 집회는 코로나로 중단하고 대신 한동안 줌(zoom)으로 강의했으나 어깨 관절 수술로 이도 중단하고 현재는 년 2~3회 전도잡지만 발행하여 국내 및 소수 일본 독자들에게 발송하는 일만 하고 있다.

 

나의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정체(identity) 소개가 좀 길어졌는데 이제 여행 소감이다.

먼저 이번 유적지 탐방 여행에서 전체적으로 느낀 것은 두 가지로 정리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리스도께서 활동하신 이스라엘에서 느낀 것은 ‘여기가 주께서 오셔서 활동하신 하늘과 땅이구나!’정도의 감흥이었다. 최선의 고증을 거쳐 여러 곳에 세워졌다는 ‘기념 교회당들’은 돈벌이 관광상품이고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길, ‘비아 돌로로사’라고 만들어 놓은 곳은 상점들이 빼곡한 너저분한 좁은 골목길의 연속이었다. 현재, 아니 이전부터 사람들이 이스라엘에서 볼 수 있는 것은 유대교, 회교, 기독교가 어우러진 평화의 왕 예수의 복음을 몰각한 인간의 난장판 싸움터였던 것을 여기저기 총들고 서 있는 군인들이 상징적으로 대변하고 있는 듯했다.

나는 이스라엘을 떠나면서 곰곰이 느낌을 정리하려 하니 이 말씀이 떠올랐다.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려지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행 1:11)

나는 지금 이 부분에서 터져나오는 눈물을 억제하고 이를 내게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으로 받아들인다.

‘병덕아, 네가 본 이스라엘에서 조금이라도 내 흔적을 찾으려고 하지 마라. 나는 거기 없다. 이제 내가 있는 곳, 성지(聖地)는 바로 네가 서 있는 곳이다. 너는 내가 부를 때까지 적은 영역이라도 네가 서 있는 그곳을 성지(聖地)로 만들어라.’

 

나는 사실 여행을 떠나기 전에도 그리스도인의 ‘성지(聖地)’에 대해 이런 생각은 가지고 있었다. 그럼에도 나는 나의 지인들에게 주께서 거니셨던 곳들을 나도 한 번 땅이라도 밟아보고 싶다 했고, 특히 물과 해변은 변치 않았을 것이므로 주께서 부활 후 제자들을 찾아오셨던 갈릴리 해변을 나도 걸어보고 싶다고 했었다. 그래서 그 주변에 도착 후 가이드와 인솔자에게도 갈릴리 해변을 걸을 기회를 달라고 두어 번 요청했던 것이다. 그러나 역시 별 의미 없는 일이었다.

결론적으로 이스라엘 여행의 큰 소득은 잘하든 못하든, 나는 나의 믿음의 분량대로 부르심을 받는 때까지 내가 서 있는 작은 영역이라도 그곳을 성지로 만들어야 한다는 사실의 재확인이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다음, 터키, 그리스 등의 유적지 탐방 소감이다.

 이 지역들은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영에 붙잡힌 사도들, 특히 기독교의 토대를 놓았다고 할 수 있는 바울의, 죽음을 불사한 활동지로서, 생각만 해도 감사와 고개가 숙여지는 지역들이었다. 따라서 기념교회당이든 그가 설교했다고 전해지는 회당 터든, 아고라(광장)든 어디든 바울과 관련되었다고 전해지는 곳들을 둘러보고 싶었다. 그래서 안내하는 여러 곳들을 부지런히 따라다녔고 사진도 찍었다. 그 첫 번째는 그의 3차 여행의 종착지로 마지막으로 상륙한 이스라엘 땅 가이사랴 항구에서는 로마 전도를 위해 자신의 안위를 전혀 아랑곳 하지 않고 이를 말리는 신도들을 나무라는(행 21:13), 사도행전에 나타난 신앙 용장(勇將)의 모습이 생각되어 경모(敬慕)와 숙연함을 금할 수 없었다. 이어서 터키에서는 안내하는 곳을 따라 에베소 유적지, 두란노 서원 유적지에 관심이 갔고, 이어 그리스에서는 아시아의 두로아 지역에서 꿈의 환상 중 유럽에 속한 마케도니아인의 도움 요청을 받고(행 16:9) 기독교 전도 역사에 하나의 획을 그은 유럽 전도를 위해 에게해를 건너 상륙한 마케도니아의 네압볼리(까발라) 항과 이어지는 빌립보, 그가 동역자 실라와 일시 수감되었다는 감옥, 사도행전의 바울의 실제의 전도 여정과는 여행 일정이 거꾸로 되어서 남쪽의 고린도 지역 겐그레아 항을 보고, 데살로니가 지역을 거쳐 왔는데 어디서나 그리스 지역에서는 루디아와 같은 영접자도 있긴 했으나 대체로는 그에 대한 배척, 봉변, 수감 등 갖가지 역경, 고난을 무릅쓴 치열한 전도 여정을 생각했다.


한편, 이루 말할 수 없이 열악했을 교통환경에서 실로 물불을 가리지 않은 바울의 전도 열정 못지 않게 깊은 인상을 주는 것이 터키 갑바도기아 지역 초대교인들의 피난처 ‘데린구유’ 땅굴이었다. 처음 힛타이트인들이 로마의 박해를 피해 땅을 파고 숨어 들어간 땅굴이라는 것으로 다시 그리스도인들이 로마의 핍박을 피하기 위한 피난처로서, 땅굴이라기보다는 그 규모가 ‘지하도시’라 할 수 있다는 가이드의 설명이었다. 나는 예전 신앙을 지키기 위해 로마의 지하 공동묘지인 ‘카타콤’을 거미줄처럼 미로를 만들고 숨어 예배와 삶을 이어간 로마 그리스도인들의 신앙을 위한 투쟁의 삶의 현장을 보면서 루터의 독일 종교개혁지, 칼빈의 스위스 기독교국화 등 어떤 곳의 광경보다 깊은 인상과 내 신앙의 보잘 것 없음을 생각했는데, 이 ‘데린구유’ 땅굴이 또한 ‘카타콤’ 못지 않았다. 그에 비해 편안하기 짝이 없는 내 믿음이라는 것, 그 현주소를 다시 생각하게 했다.

 

한편, 터키 갑바도기아 지방의 수도사들의 은거지였다는 ‘동굴교회’나 11세기 그리스 정교회 수도원이었다는 천야만야 한 절벽 위의 교회당들은 그것들을 건축하고 고행의 삶을 산데 대해 감탄이 나오기도 했으나 다른 한편으로 내게는 땅을 버리고 자꾸 하늘로만 오르려 하는 잘못된 신비주의적 기독교 이해 내지 신앙관이 엿보이기도 해서 ‘예수의 종교는 저런 것 아니다’는 생각이 이들을 보고 얻은 값진 교훈이라 할 수 있었다.

 

끝으로 자잘한 소감 몇 가지다.

먼저 여행사 담당자들에게 주고 싶은 것인데 앞으로는 여행지의 기후를 좀 정확히 파악해서 그 정보를 여행자들에게 알려주라는 것이다. 여행 물품을 준비할 때 가장 중요하게 챙겨야 할 물품이 기후에 맞는 옷가지들이다. 처음 나의 우기(雨氣) 염려에 대해 남자 여행 담당자 분은 이스라엘은 2월에 우기(雨氣)인데 비는 한국 장마와 같지 않고 내렸다 그쳤다 하며 심하지 않은 정도라는 것이었다. 다만 기온에 대해서는 추울 수도 있으니 가벼운 패딩 겉옷을 준비하라는 전갈이었다. 그렇게 보면 비가 오락가락 하는 한국의 봄날씨를 곧 예상할 수 있고 그래서 패딩 잠바 외에 주로 봄 옷가지와 반팔 얇은 바지 등, 여름 옷들을 가지고 갔었다. 그런데 실제 겪어보니 이스라엘의 날씨는 거의 오리털을 벗을 수 없게 할만큼 여행하는 내내 햇빛이 나도 크게 달라지지 않을만큼 추웠고, 터키는 더욱 그랬고, 그리스 역시 기온이 조금 오르기는 했으나 크게 다르지 않았다. 나는 터키의 가이드가 여행안내 활동 내내 한 번도 발등까지 오는 두꺼운 오리털 외투를 벗은 모습을 보지 못했다. 이는 이스라엘 가이드와 그리스 여성 가이들도 기본적으로 두꺼운 옷 착용이 비슷하고 우리들에게도 늘상 추울 수 있으니 대비하라는 당부였다. 우리 여행객들도 봄 옷을 입는 분들 못 보았으며 역시 최대한 패딩 내지 두꺼운 옷을 입고 행동했다. 나뿐 아니라 아내 말에 의하면 다른 여자분 한 분도 겨울 옷 위주로 준비하라는 말이 없었다며, ‘툴툴거리더라’고 했다. 나는 봄 옷 일부를 속에 겹겹이 끼워 입어야 했고 필요도 없는 여름 옷가지들, 봄 옷들을 끌고 다니느라 그러잖아도 수술 후유증으로 아픈 어깨를 혹사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러므로 이후 여행사에 대한 내 바램의 결론은 이것이다. 특히 나이든 분들이 많이 참여하는 이런 여행에는 고추장 가져가는 것이 좋다느니, 간식 가져가는 것이 좋다느니 하시지 말고 무엇보다 미리 세계 날씨 상황을 좀 분석하고 현지 가이드들과도 긴밀히 연락해서 최대한 예상되는 기후에 맞도록 의복을 준비시키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는 점을 말하고 싶다. 앞으로 또 2월 초에 이런 여행을 계획할 때는 그냥 ‘겨울 옷 위주로 준비하세요.’가 정답임을 다시 강조하고 싶다.

 

다음, 우리 인솔자인 최효은 대리 수고 많으셨다. 명랑하다는 평가를 받았는데 나는 여러 형제 집안의 속 넓은 맏며느리감이라는 칭찬을 해주고 싶다. 학교의 여러과정 잘 이수하시고 부군과 함께 계획된 유학생활 및 가이드 자격도 획득하여 유능한 가이드로 활동하시기를 빈다.

세 분 가이드들은 꾸준한 노력과 오랜 경험으로 쌓인 것이겠는데 가이드에 필수적인 기독교 역사와 유적지 등의 전문가들이라는 인상이었다. 특히 터키의 김홍기 가이드님은 그 분야 전문가 일뿐 아니라 아나운서처럼 언어전달력이 뛰어나서 귀가 좀 어두운 내게도 잘 전달되었다. 지식에 있어서도 대학 강단에 서도 손색 없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리스의 김순자 가이드님 역시 교회사 및 그리스 지리, 그리고 그리스 신화에도 정통해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다만 처음에는 실례이나 내 개인적으로 이분이 좀 권위주의적이 않나 하는 인상도 받았다. 농담 비슷하게 내가 옛날 군대에서 많이 들었던 “주는대로 먹고 시키는 대로 하라”는 말을 인용하고 있었는데 그후 나는 고린도 운하에 대해 경탄스런 의미를 담아 ‘어떻게 돌을 파내어 저렇게 만들 수 있나?’ 하는 의미의 질문을 했던 것인데 답변에서 김 가이드님은 자신의 설명을 믿지 못하겠다는 의미로 받아들였지 않았나, 따라서 ‘설명해주면 그대로 믿어라’ 하는 인상을 받기도 했다. 반생을 교육현장에서 보낸 나로서는 ‘학생의 질문은 좀 타당치 않게 보일지라도 두 번이고 세 번이고 설명해 주어라’가 교육에 임하는 중요 모토로 알고 있고, 이는 가이드의 임무도 다르지 않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부분은 내 편의 순전한 오해일 수 있음도 인정하며 그렇다면 이해 바란다.

 

다음, 일행 여러분들에 대한 소감이다. 불편한 몸임에도 교회 신도들을 이끌고 오신 서안성 교회 목사님 내외분과 성도님들, 대구대학 신우회 여러 교수님들, 척박한 일본의 전도환경에서 애쓰시는 목사님 내외분, 부인의 경제적 도움에 의존하면서 종로 뒷골목의 어려운 분들을 위해 자비량 사역하신다는 목사님 내외분, 이전 부흥목사로 사역하기도 했다는 최목사님 내외분, 아직도 활기찬 활동기질의 강화에 계신 교장선생님 내외분 등, 짧은 기간이었지만 역시 그리스도 안에서의 동지 의식을 느끼게 하는 좋으신 분들이었다. 내가 여행객 들 중 최고령이며, 몸이 불편하다는 것이 어떻게 알려졌는지 여러분들이 배려해주신 것을 느끼며 감사를 전하고 싶다. 특이 대구대학의 백교수님은 언덕이나 조금 힘든 계단, 돌자갈 밭 같은 곳에서는 그림자처럼 나를 따라붙어 부축해주셨는데 이 자리를 빌어 재삼 감사를 드린다.

 

여행에 동행했던 모든 분들, 매일매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믿음으로 건승하시기를 빌어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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